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사파롱가 해전 (문단 편집) === 교전 === 과달카날 증원 임무를 맡고 있던 다나카 라이조 제독은 구축함 나가나미에 사령기를 달고, 타카나미와 함께 호위 임무를 맡도록 했다. 그 외에 구축함 6척에 보급품을 넣은 드럼통을 각 200개씩 총 1,200개를 싣고 수송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 선단은 11월 30일 쇼틀랜드에서 출항하여 과달카날로 향하기 시작했고, 이를 발견한 [[호주]] 출신의 해안감시원 폴 메이슨이 즉각 사령부에 보고를 올렸다. 보고를 받은 사령부는 이를 라이트 제독에게 전달했다. 한편 일본군 정찰기도 비슷한 시간 라이트 제독의 수상함 전대를 발견해 다나카 제독에게 보고를 올렸다. 오후 9시 40분, 다나카 제독의 선단이 사보섬 서쪽으로 접근하여 과달카날로 남하했고 보급품을 넣은 드럼통 하역작업을 개시했다. 한편 호위 임무를 맡은 타카나미는 감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떨어져 나왔다. 한편 라이트 제독이 지휘하는 제67기동부대는 일본군 함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항진중이었고, 교전 돌입을 위해 미리 [[단종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함열 선두에 위치한 구축함 플레처는 신형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어 미군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타카나미의 견시가 먼저 미군 함대를 발견했다.''' 당시 레이더 기술이 초창기였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일본군 견시의 능력은 그야말로 초인에 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이 조기발견이 미군의 이점을 날려버리는 한 가지 요소가 됐다. 다나카 제독은 즉시 하역작업 중지와 미군 함대 요격을 지시했다. 한편 플레처의 레이더는 3분 늦게 타카나미를 발견하고, 구축함 [[전대장]] 윌리엄 콜 [[중령]]은 어뢰 발사 허가를 요청했다. 이는 당초 작전계획에서 상호 거리가 5 km 미만일 경우 즉각 공격이 가능하고, 그 이상일 경우 보고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고를 받은 라이트 제독이 거리 판단을 잘못하여 '''4분간 주저했다!''' 뒤늦게 라이트 제독이 콜 중령에게 어뢰 발사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 결과 일본군은 미군의 발견이 늦은 3분간 전투기동에 들어간 상태였고, 라이트 제독이 주저하는 동안 어뢰 발사가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하고 말았다. 콜 중령 휘하의 구축함 전대가 어뢰 공격을 실시했지만 죄다 빗나갔고, 순양함열에서 전방에 돌출된 타카나미에 함포사격을 실시했다. 이는 타카나미가 레이더에 또렷하게 잡힌 까닭인데 그 결과 타카나미는 명중탄 70발을 맞고 전투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타카나미가 본의 아니게 탱킹을 하느라 다른 일본 해군 구축함들이 무사했다. 그 결과 수뢰전 경험치 [[만렙]] 찍은 다나카 제독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오며 절묘한 팀워크를 과시하던 일본 해군 구축함들에게 그야말로 농락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해군 구축함 전대는 손쉽게 미 해군 순양함들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는데 주포 발사 때마다 발생하는 섬광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일본 해군 구축함 전대는 [[산소어뢰]] 47발을 발사, 어뢰는 정확히 순양함을 향해 파고 들었다. 결국 CA-36 미니애폴리스는 함수와 함미 보일러실을 피탄당했고, CA- 32 뉴올리언스는 전방 탄약고에, CA-24 펜사콜라는 후방 기관실에 각각 어뢰가 명중했고, CA-26 노샘프턴은 후방기관실에 어뢰 2발을 얻어맞았다. CL-48 호놀룰루만이 단 한 발도 맞지 않았다. 일본군 함대는 노샘프턴에 공격을 가한 직후 완전히 철수했고, 라이트 제독은 피해를 본 순양함들에 개별적인 조치를 지시했고 잔존 미군 함대는 호놀룰루의 지휘 아래 전선에서 이탈하면서 끝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